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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부랭이/직장인의 푸념

꿀벌과 어느 청소부(1986년 6월 産銀勞報)

<淨化관련 수필 優秀作>

 

꿀벌과 어느 청소부

 

林 順 澤

 

  집단 전체의 生存을 위하여 개인의 福祉와 생존이 철저히 무시되는 대표적인 組織으로 꿀벌 社會를 들 수 있다.

  한 마리의 여왕벌, 수십 마리의 수펄, 수만 마리의 일벌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 社會에서 각 구성원은 엄격한 機能의 分化를 이루고 있으며 여왕벌은 産卵을, 수벌은 生殖을, 일벌은 기타의 모든 組織維持活動을 담당한다.

  수십 마리의 수펄 중 여왕벌을 受精시키는 영예를 얻은 수펄은 自身의 기능이 끝나자마자 죽게 되며, 장마가 오래 지속되거나 겨울이 가까워지면 많은 수의 수펄이 食糧의 節約을 目的으로 제1차적으로 살해당하거나 집 밖으로 축출 당한다.

  꿀벌의 集團社會에서 일벌은 나이가 들어 기운이 衰하게 되고 충분한 量의 꿀을 모아오지 못하게 되면, 지난날의 功績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저지된다.

  일벌의 針은 갈고리 모양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것으로 일단 사람이나 포유류를 쏘게 되면 빠지지 않고 몸의 일부가 떼어지는 치명적인 상처를 받게 된다. 물론 다른 벌이나 곤충에 대해서는 자신이 상처를 입지 않고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다. 일벌들은 그들의 집이 곰이나 생쥐와 같은 動物에 의해 위협 받게 되면 조금도 주저 없이 자신의 針을 敵에게 선사한다. 이렇게 全體 組織을 위해서 滅私奉公한 구성원이나 바깥에서 개인적인 불찰로 날개를 다친 벌이거나 일단 상처입고 生産性이 低下 되었다고 간주되면 모두 굶어 죽던지 살해당하던지 쫓겨난다.

  심지어 그들의 어머니인 여왕벌도 쇠약해져서 더 이상 그들의 형제를 원활하게 생산할 수 없다고 느껴지면 마찬가지의 宣告를 받는다.

  놀라운 점은 이상의 모든 迫害가 아무런 抵抗도 받지 않고 조용히 진행된다는 데에 있다.

  地球 上에 꿀벌사회만큼 能率的인 사회는 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集團 一邊倒의 規律이 적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同情과 理解라는 高次元的인 감정이 있으며 그 보다도 먼저 不幸인지 多幸인지 알 수 없으나 自身에게 加해지는 부당하고 가혹한 운명을 꿀벌처럼 묵묵히 받아들이는 順從의 美德과 忍耐心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政府綜合廳舍에서 평생 청소부로 근무하다 정년퇴직을 하게 된 어느 청소부의 退任式이 있었다. 그는 자기의 직업에 대해 조그마한 후회나 불만을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廳舍의 곳곳을 쓸고 닦으면서 그는 地球의 한 모퉁이를 淨化하고 있다고 自負하며 平生 근검절약하여 子女들의 敎育도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한 덕택에 지금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평생을 묵묵히 地球村의 한 구석을 깨끗이 해 온 政府廳舍 淸掃夫의 얘기는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주는 풋풋함이 있다. 人間社會는 꿀벌의 集團 指向的인 모임이 아니기 때문에 그야말로 人間的일 수 있는 것이다.

  맑고 곧은 양심과 겸손이 몸에 배인 그는 시종일관 선비의 자세로 自己 職分을 치러냈다. 남의 德을 입어 입신출세하려 하지 않고, 요행의 길을 더듬으려 하지 않았던 그는 이런 말도 남겼다. “꿀벌은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한다. 良心의 평안 속에 매일같이 일하면서 살다가 죽으니 여한이 무엇이 있겠는가?”

  自己 所信을 떳떳이 펴지 못하고 눈치를 본다는 것은 여느 社會를 막론하고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 눈치를 본다는 것은 組織의 윤활유로서 긍정적으로 작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눈치만을 보진 않았다. 정해진 틀(청소부로서의 任務)이 있으되, 그 틀에 얽매이지 않았고 法 혹은 規律을 인간이 共同社會를 영위하면서 공동의 利益을  위해 내려지는 理性의 명령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理性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存在이기 때문에 인간이 다른 動物과 특징적으로 다른 점은 社會를 구성하여 共同善을 창출해 내는 것이다.

  또한 組織과 秩序가 있다는 點이 人間社會가 다른 동물들의 집단사회와는 다른 점이다. 조직과 질서를 지탱하는 것으로서 規範이 존재한다. 社會에서 삶을 누리는 개개인이 제각기의 생각에 따라 自己에게 편리한 쪽으로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規範 아래서 서로의 共同利益을 追求하는 데 人間社會의 진면목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구성원 모두가 共同利益을 창출해 내고자 하는 統合意志가 불가결의 요소이다.

  順從과 集團에의 奉仕로 점철되는 꿀벌의 一生에서 우리는 遵法精神과 자기희생을 배워야 하고 平生 검소한 生活을 영위한 어느 청소부의 정년퇴임에서 근검절약을 본 받아야 한다.

  갓난아이가 태어나면서 우는 理由는 국민 1인당 100만 원 꼴이나 되는 빚이 힘겹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外債問題는 생각보다 심각함을 알 수 있다. 돈으로 편한 생활을 사려는 풍조가 번지다 보면 필연적으로 消費構造는 上向勢를 띨 수밖에 없다. 두부 한 모까지 배달해 주는 아파트촌의 물건값이 비싸지 않을 수 없고 심부름센터에 민원서류를 부탁하면 印紙稅 등 수수료의 10倍가 넘는 수고비를 치러야 한다. 옆집에 음성다중 TV가 있으면 그때부터 멀쩡하던 자기네 TV가 시원찮아 보이는 참에 왜색 짙은 克己訓練까지 받으며 세일즈 기법을 익힌 商魂이 교환 판매를 내세워 부추겨대니 最新 모델로 바꾸어 들여야 하고 빨래는 폼으로 모셔두는 세탁기일수록 外製라야 직성이 풀리는 世態는 後世들의 교육에 악영향을 끼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理致다. 끓는 물만 부으면 바로 먹는 즉석면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밀가루 반죽해서 민 손칼국수의 구수한 맛을 따를 수 없다. 아이의 生日을 축하해 준다고 外製학용품을 사주는 것보다는 떡쌀 담갔다 시루떡 쪄주는 정성이 한결 돋보이는 것이다.

  現代人의 가장 불행한 착각은 自己本位의 현실을 세상의 모든 것으로 인식하고 경쟁, 좌절하는 일이다. 상부상조하여 共存하는 사회, 忍耐와 調和로 공존하는 自然의 섭리를 잊고 있는 것이다.

  이웃과 더불어 다정하게 共存하는 美德을 실천해 온 우리 겨레는 印度의 詩聖 타고르가 예견했던 아시아의 등불로 촉망받는 精神的 뿌리를 지니고 있으므로 꿀벌의 忍耐心과 청소부의 근검절약을 교훈삼아 우리 民族 多數의 幸福 增進에 보탬이 되도록 맡은 바 직무에 충실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淸州지점 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