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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 40기 답사기

11. 조선왕릉 40기 답사 열번째 : 獻仁陵과 懿陵

2020년 3월 15일(일)

 

조선왕릉 40기 답사 그 열번째 길나섬했던 날.

오늘은 먼저 서울시 서초구 헌인릉길 42에 위치한 헌릉 · 인릉을 찾아갔습니다. 헌릉(獻陵)은 조선 초기 때 왕권(王權)강화의 기틀을 잡은 3대 태종 이방원(1367~1422)과 원경왕후 閔씨의 쌍릉입니다. 헌인릉의 구조상 조선 23대 순조(純祖, 1790~1834)와 순원왕후의 능인 인릉(仁陵)을 먼저 둘러 보았습니다.

 

1. 헌인릉(獻仁陵)

 

 

대한민국 사적 제194호 헌릉 · 인릉 표석의 앞과 뒤입니다.

 

2009년 6월 30일 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표석의 앞과 뒤입니다.

뒷면에도 ↓ 이러한 표지(標識)가 있는 줄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저는.

주차장에 알맞게 주차한 뒤에 입장권을 끊고 조선왕릉 답사 29기, 30기 헌인릉 스탬프를 날인 받았습니다.

 

 

1-1. 인릉(仁陵)

 

 

인릉 정자각(丁字閣)의 이모저모

 

인릉 비각(碑閣)과 비문(碑文)

 

 

인릉 비각도 뒤쪽에서 당겨 찍어 보았습니다.

 

인릉을 먼저 답사하고 이어서 헌릉으로 가는 길목에 노란 산수유 나무와 화살나무가 움트고 있습니다.

 

1-2. 헌릉(獻陵)

 

헌릉 능침 공간의 전경 사진(조선왕릉 중부지구관리소 刊 서울 헌릉과 인릉 리플렛에서)

 

서기 1400년에 王位에 오른 태종은 중앙과 지방의 제도를 정비하고 관제를 개혁, 호패법을 실시하는 등 새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헌릉의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르는 참도(參道)는 어로(御路)는 없고 향로(香路) 박석만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정자각(丁字閣)이 낮게 조성되어 있어서 정자각에 오르는 신계(神階)와 어계(御階) 계단도 1~2개인 것이 눈에 띄네요. 선대왕인 동구릉의 건원릉은 물론 後代 王들의 계단보다도 낮게 되어 있습니다.

 

정자각에서 능침공간까지 이르는 신로(神路)가 꽤 길군요.

헌릉의 비각(碑閣)

 

세조(世祖) 때 영의정 정인지 등이 王의 공덕은 (조선왕조)실록에 있으므로 새로이 신도비(神道碑)를 세울 필요가 없다고 주청해 이후 왕릉에서는 신도비를 세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신도비는 왕들의 공덕을 적은 비석으로 헌릉(獻陵)에는 2개의 비석이 있는데

아래 왼쪽은 임진왜란 때 손상된(龜頭가 없음) 원래 신도비(1424년), 오른쪽은 1695년(숙종 21)에 하나 더 증설해 세운 것입니다.

 

271년 뒤에 새로 설립한 新 신도비와 나란히 서 있습니다.

 

길지 않은 헌릉 산책로를 휘돌아서

 

 

능침공간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야자수 마대 계단을 오릅니다. 최대한 곡장(曲墻) 가까이 다가가서 많은 석물(石物)들을 찍었습니다.

헌릉(獻陵) 능침공간을 휘돌아 내려 오면서.

 

 

맞은편 언덕에 마련된 계단을 올라서 인릉(仁陵)의 능침공간에도 올랐습니다. 인릉은 곡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을 막아 놔서 이렇게 당겨 찍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릉은 23대 純祖와 純元王侯의 합장릉입니다.

순원왕후(純元王后) 金씨는 1802년(순조 2)에 왕비가 되었는데 헌종과 철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면서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여 조선의 왕비 중 유일하게 2번 수렴청정을 한 왕비가 되었습니다.

 

 

↓ 슬리퍼 신은 남녀는 향로(香路) 위를 걸어 갑니다. 오른쪽 어로(御路)를 걸으라고 되어 있음에도.

 

헌인릉의 재실(齋室)은 왕릉 바깥 주차장에서도 꽤 떨어진 곳에 있더군요. 그것도 출입문이 굳게 잠겨 있고

 

헌릉과 인릉 답사의 디카 사진 117장을 하나의 GIF로 묶고 다시 MP4로 변환하여 게재합니다.

 

 

2. 의릉(懿陵)

 

서울 헌인릉에서 27㎞ 떨어져 있는 서울 의릉까지 달려 갔습니다. 분당 - 내곡고속화도로는 물론, 강남로와 성수대교를 건널 때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통행 차량이 그다지 많이 않았습니다.

 

 

의릉 매표소 옆 수표소(표를 받는 곳이 따로 있음) 직원이 스탬프를 정성스럽게 찍어 줍니다.

의릉(懿陵) 역시 지난주부터 '경로우대'에 해당되어 무료(₩ 0)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건물 사이에 낀 형국의 의릉(懿陵) 경내에는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었던 중앙정보부(→ 안기부 → 현 국정원) 건물이 자리잡고 있어서 30여 년 동안 봉쇄구역이었다가 1996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되었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중정 건물은 현재 의릉 강당으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의릉 금천교(禁川橋)를 건너자마자 홍살문과 참도(參道)로 이어집니다. 곧장 정자각(丁字閣)으로.

 

 

의릉 능침(陵寢)은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 형식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능역 위에 경종의 능이, 그 아래에 선의왕후의 능이 자리잡고 있는데 왕과 왕비의 능을 옆으로 나란히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의릉(懿陵)은 능역의 폭이 좁아 천장산 산천의 좋은 기운이 흐르는 맥을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능을 위 아래로 배치한 것이랍니다. 이러한 同原上下陵 형식은 영릉(제17대 孝宗과 인선왕후의 능)과 의릉 두 왕릉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의릉을 오른쪽에서 먼저, 산책로를 휘돌아 왼쪽에서 촬영했습니다.

 

뒤 천장산 산책로는 5월까지 산불예방 차원에서 막아 놨습니다. 5월 지나서 다시 오면 천장산 정상까지 왕복할 수 있을 듯 합니다.

↑ 진달래꽃이 이만큼이나 피었더군요. 3월 중순 15일 현재. 그 옆 香나무의 자태도 너무나 멋집니다.

 

문화재청 조선왕릉관리소 중부지구관리소 刊 서울 의릉 리플렛에 있는 懿陵의 全景 사진.

 

 

의릉 답사의 디카 사진 68장 역시 하나의 GIF로 묶고 다시 MP4로 변환하여 올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Behind Story>

 

● 서울 헌인릉을 답사하면서 입장할 때에 왕릉 정식 직원이 아닌 남자 분께 부탁했더니 작은 스탬프는 없다면서 뒤에다 무지막지하게 큰 스탬프를 찍어 주길래, 왠지 개운찮은 기분으로 헌릉과 인릉을 1시간 이상 답사하고 되돌아 나오면서 문화해설사의 집에 있는 분을 보니까 여직원으로 바뀌어 있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선왕릉 답사 수첩]에 맞는 작은 도장이 없냐고 물으니 익숙한 사투리로 당연히 있다면서 아까 그 남자 직원은 정식 직원이 아니라서 잘 몰라 그랬다는 겁니다. 

여직원의 성함은 '진분남'님. 서울 선정릉에서 10년 근무 후 이곳 헌인릉으로 이동했다면서 고향이 저랑 이웃인 경남 합천이며, 오라버니 두 분도 居昌 적십자병원 근처에 살고 있다 하더군요. 암튼 제 명함을 건네며 통성명했습니다. 獻仁陵 스탬프는 큰 거와 작은 거 2개를 받은 셈이 됩니다 그려. ㅋ

 

 

 오늘(3월 15일)로써 조선왕릉 40기 중에 31기를 답사 완료하여 답사율 77.5%(31 ÷ 41)를 시현했어요.

 

위 도표에 보시다시피 오늘까지 31기를 답사했고, 다음에 경기도 南楊州市에 있는 광릉/사릉/홍릉·유릉을 하루에 답사하고 나면 이제 一山 우리집에서 머얼리 떨어져 있는(그러나 과거에 한 두번씩은 가 봤었던) 경기 여주의 영녕릉(英寧陵), 경기 화성의 융건릉(隆健陵)과 강원 영월의 장릉(莊陵) 등 세 곳은 하루씩 할애하여 차분히 답사를 하려고 합니다. 특히 4대 世宗大王과 17대 孝宗의 영녕릉 주변에는 '여강길' 5개 코스가 있다고 해서 아내와 함께 여강길 코스를 걷고 왕릉 답사를 나름 기획하고 있습니다. 

(혼잣말 : 많은 길동무님들께서 저의 조선왕릉 답사를 응원해 주시니 그저 고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