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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나부랭이

2003년 8월 4일 글 : 벌교 율어를 다녀와서

08.좋은 글/월요 편지소설 '태백산맥'의 '율어'를 다녀와서..
앵베실(임순택)추천 0조회 2003.08.04 15:56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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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본문내용



"벌교 가서 주먹자랑 하다가 큰 코 다친다"라는 말이 전라남도에서는 속설이 되어 있다.

보성군에는 보성읍과 벌교읍이 있는데(보성읍 가내마을이 독립신문을 펴낸 서재필이
1866년 태어 난 곳이다) 벌교가 먼저 읍이 되었고 벌교 포구에는 일제 식민지부터
돈이 흔하고 주먹깨나 쓰던 왈패들이 더러 있던 곳이다.

이 벌교 포구가 갑작스레 커진 것은 일본의 수탈정책에 힘 입은 바 크달 수 있다.
일본놈(?)들은 벌교 읍내에 터를 잡고 보성 땅에서 나는 갖가지 물산과 함께 남쪽에
혹처럼 매달려 있는 고흥땅에서 농수산물을 빼갔다.

순천만을 낀 이 포구에는 통통배가 자주 들락거렸거니와 기왕에 있던 광주시와 고흥군을
잇는 도로와 1976년에 놓인 목포시와 순천시를 잇는 국도가 서로 만나는 지점에 자리
잡아 교통의 중심지가 된 탓이기도 하다.

벌교 얘기는 여기서 중지하고,

실은 정말로 가보고 싶었던 곳이 벌교에서 조금 떨어진 '율어'라는 곳이다.

율어(栗於).

작가 조정래가 10권에 달하는 소설 '태백산맥'에서 주 무대로 삼았던 벌교, 그 중에서도
'해방구 율어'를 내 눈으로 확인 하고 싶었던 것이다. 벌교읍을 지나 석거리재를 오르면
왼쪽에 큰 저수지가 있고 그곳에서 좌회전하여 저수지를 끼고, 오르다 보면 천연의 성곽
(에워싼 산줄기)에 의해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지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위 한겨레신문 사진 참조>

'해방구'. 그것은 빨치산 좌익세력이 장악한 지역을 뜻한다. 작가 조정래가 해방구
율어에 대해 보인 관심과 애정은 두드러진다. 그곳은 단순히 좌익에 의해 장악된 곳이
아니라 'Utopia'로 그려져 있다.

높은 산줄기가 에워싼 한 가운데에 펼쳐진 논과 밭. 그리고 집들이 그 당시 과연 해방구
다운 면면을 보여 주고도 남았다.율어면은 크게 상도와 하도로 구분되는 '얼치고개'가
있는데 일명 '38선고개'로 불릴 정도로 좌,우익 대립이 심했던 곳이다.

상도 칠음리에는 지금도 '김용규'라는 인물이 살고 있다는데 '태백산맥' 에서는 '김태규'로
등장한다. 이 사람은 지금 껏 미전향수로 복역하다가 얼마 전에 출소한 철저한 좌익사상으로
무장된 그 당시 좌익의 우두머리였다 한다. 아뭏든 골치 아픈 이데올로기는 접어 두고라도
주릿재 고개에서 내려다 본 '율어'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fortress) 그대로 였고
'태백산맥'의 주인공 염상진의 위치에 선 듯한 착각에 빠져, 경이로운 눈길로 내려다
보았다.

결국, 2단도 모자라 1단 기어로 주릿재 고개를 넘어, 벌교를 뒤로 하고 주안댐을 거쳐
光州로 돌아 오니 어느덧 해는 지고 어둠이 시내를 뒤엎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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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1992년 11월 광은리스 본사에 근무할 때 쓴 글을 리메이크 한 글,
주2) 오늘자 한겨레신문 31면에 당시 보았던 '율어 해방구'사진이 게재되었길래,
반가운 나머지 사진을 퍼 와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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