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나부랭이/이곳저곳 탐방

울릉아, 독아...(07)

앵베실 2024. 2. 28. 16:14

8월 13일 토요일.

그날 새벽에 서울을 떠난 일행은 포항 여객터미널에 09시 조금 넘어 도착해서 예약 승선권 교환 결제를 하고 포항항에서 출발한 10시 정각 이후,

 

3시간 넘게 항해한 뒤, 도동항에서 잠깐 '홍합(죽)밥'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곧바로 또 2시간 정도 울릉도 유람선을 탄 뒤라서 저동항(苧洞港)에 내리자마자 시원한 맥주 생각에 오징어 물횟집을 찾은 것이었다.

 

저동(苧洞)은 옛날부터 이 지방에 많은 모시(苧)가 자생하여 지명을 저포(苧浦, 우리말로 모시개)라고 하였으며 조선조말 울릉도 감찰사 이규원의 일기에도 대저포, 소저포로 되어 있다. 서울 南山 밑자락에 위치한 중구 저동(苧洞)도 같은 이유로 생긴 지명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서울 저동에는 저포(苧布)를 취급하는 상점이 있었다는 점만 다르다. 포(浦)와 포(布)는 천양지차니까.

 

울릉도의 상징은 다음과 같다.

 

 울릉군청의 공식홈페이지 : http://www.ullung.go.kr

 

 

 

 

경상북도 울릉군의 군목(郡木)은 위 사진 제일 왼쪽의 '후박나무'이다.  이 후박나무는 온대성 식물로서 따뜻한 지방에 많이 자란다. 그런데 울릉도는 해양성 기후로서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들보다 따뜻한 편이라 후박나무 및 동백나무 등이 많이 자라고 있다.  그래서 군화(郡花)도 동백꽃인 것이다. 이 후박나무는 그 열매 및 나무껍질이 한약재로 쓰이기 때문에 수난을 많이 겪었다. 요즈음에는 그런 몰지각한 일이 거의 없는 듯 하지만 한때는 이 나무의 껍질을 몰래 벗겨 한약상에 넘기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도합 5시간 가량 배를 타고 난 뒤라 용캐도 배멀미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13일 새벽부터 서둘렀던 여정이었기 때문에 일단 숙소에 가서 여장을 풀기로 했다. 그 전에 用煥의 부인이 손수 몰고 온 레간자의 큰 트렁크에 각자의 짐을 싣고 울릉도 해상일주를 했던 바, 도동항 상점 골목에 걸터 앉아 차를 기다리기로 하고, 5명은 울릉도 영업용 택시를 탔다.

 

아, 울릉도 소속 택시는 전부 4륜 구동의 테라칸이다. 원래 7인승이지만 군청에서 승객 5명만을 태워야 한다는 조례가 제정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현대자동차의 '테라칸'은 '대지(territorial)의 왕(Khan)'이라고 했던가? 좁고 험한 울릉도 내의 해안도로, 산악도로를 잘도 달린다.

 

숙소에 가서 쓸 모기향과 울릉도 호박을 섞어 빚은 '호박 막걸리' 2병을 사서 택시에 실었다. 울릉도 내에서는 용환의 부인 김정자님이 미리 갖고 들어간 대우자동차의 레간자와 포항에서 썬 플라워 호에 차량을 싣고 갈 경우, 중형차 기준 1대당 왕복요금이 317,600원이라서 1대는 그냥 울릉도 택시를 대절하기로 했던 것인데 결과론적으로 옳은 결정이었지 싶다.

 

울릉택시(회사) 기사들은 운전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기사 개개인이 '관광 가이드'였다. 우리를 태운 테라칸 택시는 도동항에서 비탈길을 오르더니, 울릉군청을 지나 산악 입체교차로인 '무릉교'를 돌아, 산중턱에 있는 해군부대와 울릉도 군조(郡鳥)인 흑비둘기 서식지를 지났다. 도보여행이면 몰라도 이 黑비둘기(천연기념물 237호) 는 택시기사조차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푸념을 한다. 울릉도 신항이 개설되고 있는 사동(沙洞)을 지나고서부터는 東海바다를 끼고 도는 해안도로가 계속되었다. 이른바 926번 도로.

 

저녁 해거름해서 용환 처가 별장이 있는 울릉도 서면 남양1리(일명 골계마을)입구에 도착했고, 좁은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자 김정란님이 다녔다는 중학교 교사와 운동장이 보였고, 여기서부터는 전형적인 시골 풍경이었다. 길섶 어느 집에는 약초를 먹고 자란다는 약소(藥牛)도 외양간이 따로 없이 길 가에 위치해 있었다.

 

드디어 아담하게 단장된 숙소에 도착.

 

골계마을 표지석. 이 마을은 원래 비파산을 사이에   김정란님이 애써 가꾼 별장 숙소 전경.

두고 동서로 두 골짜기에서 냇물이 흘러내리고 있    이번 연휴 때,9명의 대식구들을 위해 정말로 애를

 다른 마을보다 골짜기(谷)와 시내(溪)가 많다고    많이 쓰셨어요.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해서 골계(곡계→골계:자음접변 현상)라 불렀다 함.  말씀을 드립니다. 재수씨 !

조선조에서는 곡포(谷浦)라 불렀으나 겨울에도 울

도 내에서 가장 따뜻한 지대라 하여 南陽洞이라

불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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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한 일행들은 갖고 간 배낭을 대충 툇마루에 던져 놓고, 숙소 안쪽에 있는 계곡으로 달려 갔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근 채, 도동에서 산 호박막걸리 두 병을 안주도 없이 종이컵에다 1~2잔씩 따라 권커니 잣커니 마셨다. 호박을 섞어 약간 시금털털해서 그런지 한 두잔씩 마신 뒤, 덧정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남은 한 병은 계곡 바위에 지긋이 담가 놓고 왔으니.. 오늘 현재까지 그대로 있을 진저~.

에구우~ 아까비~ 울릉도 호박막걸리 한 병 돌리도~!

 

대충 웃통 벗고 계곡물로 등목도 하고, 숙소까지 무사 도착했음을 안도하는 '담소'를 나누었다.

 

이어서 마당 한켠 대추나무 밑에 세워져 있는 평상(平床) 하나를 여럿이 곧추 세워 자리를 잡아 놓았으나 아래 사진의 돌배나무에 그윽히 자리 잡은 평상이 더 좋을 것 같아 평상 위 장판을 닦기 시작했다.

 

숙소 왼쪽 돌배나무 아래에 마련된 평상.                평상에 걸레질하고 있는 윤봉수 후배.

 

위 평상에서 일행 10명(用煥의 부인 김정란님도 합류했으므로)이서 그때 막 한 밥과 김치찌개 그리고 여러 가지 나물들과 고추 등 푸짐한 반찬을 맛있게 먹고 후식으로(?) 울릉도 産 옥수수를 깨물었다. 석양이 지고 어두워지기 전에 돌배나무를 기둥삼아 가로등을 하나 연결해서 불을 밝혔고, 여럿이 모여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다가 그냥 잠자리에 들기 뭐하지 않느냐고 의견의 일치를 봐서 투구바위가 지키고 있는 남양(南陽) 몽돌해수욕장 자갈밭으로 '마실'을 나갔다. 한 명의 열외도 없이.

  첫날밤, 몽돌해수욕장 자갈밭에서의 권영근.           같은 몽돌해수욕장에서 돌 하나 주워 든 황규준

디카가 싸구려라 밤엔 제대로 못 찍었음.                 부부의 모습. 아, 후진 나의 디지털카메라여 !

 

피곤한 몸을 잠시라도 쉬기 위해서 둥글둥굴한 몽돌밭에 드러 누워 하늘을 보았으나 음력 7월 9일을 밝히고 있는 달은 '반달'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 줄기 달빛이 울릉도 서쪽 남양 앞바다를 정확히 둘로 가르고 있었고,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밤 바닷가에서 어린아이들 마냥 자갈을 주워 '물 수제비' 를 뜨기도 하고, 누가 멀리 던지나 내기도 하면서 아쉬운 시간을 달랬다.

 

자, 내일(14일) 아침 일찍, 꿈에도 그리던 독도(獨島) 입도를 위해, 숙소로 돌아 가 잠을 청하기로 했다. 방이 세 개가 마련된 숙소는 방 마다 뒷도란 쪽 문이 나있어 열어 놨더니, 산에서 내려오는 맞바람이 어찌나 시원한지 한 여름밤임에도 불구하고 선풍기 따윈 전혀 무용지물이었다(그때 켠 Sky 위성 TV 뉴우스에서 서울은 '열대야'였다고 했으니...).

 

나는 가운뎃방에서 권영근, 황규준과 동침했다.

잠들 기 전, 권영근한테 코 골지 않는다고 다짐을 받았건만 영근, 규준 둘 다 곤했던지 징~허게 코를 골아댔다.   

 

----------------------------------------- 계속됩니다. 앞으로 4~5회만 더 쓸게요. 연못 澤.